엄마가 못 다한 말을 부소경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확실하게 가성섬에 엄마와 관련된 사람이나 사물이 있다는 걸 알았고, 분명 중요한 일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염원을 완성하기 위해 가성섬에 가서 답안을 찾는 게 부소경이 고집스럽게 가성섬을 공격하려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서 씨 집안 어르신은,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계속 해서 부소경에게 서 씨 집안 어르신에게는 꼭 잘해야 한다고 누누이 당부했었다. 그래서 이것도 부소경이 매번 서 씨 집안 어르신과 맞서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서 씨 집안 어르신이 임서아네 가족을 서 씨 집안 안에서 보호를 해준다면, 부소경은 정말 그 가족들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임 씨 가문 사람들은 가성섬에 있으니,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그리고 마침 신세희가 복수를 할 수도 있었다. 부소경이 그가 가성섬을 공격하려는 이유를 말하자 신세희가 속상해서 말했다. “소경씨, 어머님한테 그렇게 고충이 많으신 줄은 몰랐어요. 살아계실 때는 저한테 한번도 그런 말 안 하셨거든요. 좀 일찍 알았으면 나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살아계실 때 더 잘해드릴 걸 그랬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제가 옆에 있어 드렸던 시간이 너무 적었어요. 정말 너무 적었네요.” 끝까지 말을 하던 신세희는 눈시울이 빨개졌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하숙민은 자신의 부모님을 제외하고 그녀와 가장 친한 사람이었다. 감옥에 살던 2년동안, 신세희는 하숙민을 도와서 많은 일을 덜어줬다기 보다는, 사실 하숙민이 그녀를 더 많이 챙겼다고 볼 수 있었다. 하숙민은 감옥에서 돈이 많았어서 먹는 것과 입는 것들이 다 좋은 것들이라, 그래서 늘 신세희를 도와줬다. 나중엔 신세희에게 건축 관련된 지식들까지 많이 알려주었다. 그러나 지금 사모님이 된 신세희는, 정말 하숙민을 너무 너무 챙겨주지 못 했다. 근데 그건 본인이 궁지에 몰린 탓도 있었다. 만약 그때 자신의 조건이 좀 더
주방에 있는 여자는 매우 현모양처 같아 보였다. 그녀는 바쁘게 요리를 하면서, 옆에는 유리가 꼬리처럼 따라다녔다. “윤희 이모, 엄마가 먹고 싶다던 새우찜은 다 된 거예요? 저 지금 딱 하나만 먹고 싶어요.” “하하.” 고윤희는 웃었다. “지금은 조금 뜨거워서 식힌 다음에 껍질 까줄게, 어때?” 신유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아줌마.” 고윤희는 바로 신유리를 위해 껍질을 깐 뒤, 작은 접시 위에 식혔고, 1분 뒤에 다시 새우를 들어서 조심스럽게 신유리 입 안에 넣어주었다. 꼬마 아가씨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고윤희는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봤다. 거실 안, 두 남자는 이 모습을 보면서, 부소경은 웃었다. 그러나 구경민은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한 표정이었다. 그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 건가? 그는 원했다. 하지만 그는 고윤희와의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는 고윤희에게 상처 주기 싫었다. 마음 속 깊이 그는 아직 그 여자를 생각하고 있었다. 한 시간도 안 지나서 고윤희는 책상을 꽉 채운 요리들을 준비했다. 이 식탁 위에 요리들은 신세희와 친구들이 밖에서 먹은 것보다 더 맛있어 보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구경민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신세희와 신유리가 앞에서 보고 있어도 구경민은 내숭을 떨지 않고 많이 먹었다. 구경민이 우걱우걱 먹는 걸 보고 신유리도 많이 먹었다. 이 저녁 식사를 구경민은 최후의 만찬이라고 말했다. 부소경은 구경민의 머리를 때렸다. “나 내일 가성섬 가는데, 그런 재수없는 얘기 좀 안 하면 안돼?” 구경민은 웃었다. “소경아, 네가 언제부터 미신 같은 걸 믿었다고 그래? 예전에 너는, 하늘도 땅도 두려워하지 않았잖아.” 예전에 부소경은 하늘도 땅도 무서워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신세희와 신유리가 있으니 그는 신경써야 할 일이 많아졌다. 이 날 저녁, 구경민과 고윤희 두 사람은 이곳에서 밥을 먹고, 또 서로 여러가지 사항들을 당부한 뒤 그제서야 이곳을 떠
이때 엄선우가 입을 열고 말했다. “사모님, 저희가 가성섬에 온 걸 아직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희를 데리러 오신 분은 가성섬에 있는 저희의 스파이 입니다.” 신세희는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네 사람은 동시에 차에 탔고, 엄선우는 조수석에 앉았다. 부소경 신세희 그리고 신유리 세 사람은 뒷좌석에 앉았다. 차에 타자마자 작은 공주님은 신나서 가성섬 풍경을 구경했다. 가성섬은 작은 도시처럼 굉장히 협소한 땅이었지만, 이곳의 풍경은 매우 아름다웠고 날씨도 습하면서 따뜻했다. 이곳에 오자 공기의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꼬마 아가씨가 환호성을 지르는 걸 보면서 신세희는 아예 신유리와 자리를 바꿔주었고, 신유리가 창가에 앉게 해주었다. 그래야 그녀가 편하게 창밖 풍경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앞에 있던 기사는 운전을 하면서, 부소경과 신세희에게 이곳의 상황을 보고했다. “도련님, 사모님, 어제 서울에서 구성훈이 이미 반 씨 가문에 지원한 무기들이 모두 다 도착했다고 들었습니다.” 기사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으면서, 신세희는 놀라서 부소경을 보았다. “구, 구성훈이 또… 반씨 가문에 무기를 준 거예요?” 부소경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는 팔로 신세희를 감싼 뒤, 낮은 목소리로 기사에게 물었다. “이쪽에선 이미 창고 안에 다 넣어둔 거죠?”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이미 전부 다 창고에 넣어뒀습니다. 확실하게요.” 신세희는 부소경을 보며 말했다. “무… 무슨 상황이에요?” 부소경은 아끼는 듯한 눈빛으로 신세희를 보며 미묘하게 말했다. “물어보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물어보지 마.” 신세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 물어볼 게요 여보! 난 그저 나랑 유리랑 우리 가족 다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요. 그게 어느 위험한 곳이든 우리 셋이 같이 있기만 하면 돼요.” 말이 끝나고 신세희는 머리를 부소경 어깨에 기대었다. 안정적이고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하지만 오늘 보니 기사님은 정말 그 소문들을 믿는 것 같았다. 가성섬으로 도망쳐온 임지강,임서아,허영네 가족은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대표 부인이 여우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그런 그녀가 대표님 옆에 와서 영혼을 쏙 빼놓았기에 자신이 대표님의 진정한 약혼녀였지만 그 여우에게 남편을 빼앗겼다고 얘기했다. 매번 임서아가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가성섬에 거주하고 있던 부하들은 웃음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네는 이미 대여섯 살 되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고작 약혼녀였던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할까, 어떻게 하면 이야기가 약혼남을 빼앗긴 걸로 되는걸까. 하지만 이 가성섬에서는 임서아네 가족에게 이 일을 따지고 드는 사람이 없었다. 누가 그들이 군주의 환대를 받을 줄 알았겠는가. 임서아는 아무리 봐도 신세희만큼 예쁘지도 않았고 그녀만큼 부소경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저기… 대표님.” 그의 시선이 자꾸 느껴지자 기사님은 주동적으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지금 임지강과 임서아네 가족은 이미 군주님의 서원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요즘에 반호경 군주님께서 임서아씨와 반호영씨를 맺어주실 생각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반군주님께서는 이걸 강자끼리의 연합이라고 얘기하더군요.” “허!” 조수석에서 엄선우가 코웃음을 쳤다. 부소경은 여전히 동요하지 않았다. 기사님은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여기에 온 목적도 그들과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니까요. 저흰 그저 저희의 일을 다 처리한 후 여기의 무기를 높은 가격으로 파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들이 하는 얘기를 신세희는 알아듣지 못했다. 이건 모두 엄청난 일들이었기에 신세희가 개입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그저 부소경의 어깨에 기대 자신의 딸을 바라볼 뿐이었다. 딸의 시선을 따라가자 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의 풍경은 퍽 괜찮았다. 오죽하면 당시 반호영이 가성섬은 경치가 매우 좋으니 자신을 따라서 섬에 오면 무조건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을까. 현재 그녀는 정말 가성섬에 왔
신세희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차로 몸을 날려 유리를 껴안았다. “유리야, 엄마 여기 있어. 무서워하지 마.” 그리고 몸을 돌렸을 때 차 문은 이미 닫힌 상태였다. 신세희:“…”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옆에는 검은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앉아있었는데 그에게서 은은한 꽃향기가 났다. “뭐… 뭐 하려는거예요?” 신세희는 너무 놀라 심장이 내려 앉는 것 같았지만 품에 유리를 꼭 끌어안은 채 매섭게 그를 노려봤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않았다. 유리는 엄마 품에 안긴 채 겁에 질려 울음이 날것 같았으나 꾹 참고 눈앞의 남자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 나쁜 놈! 나랑 엄마를 놔줘, 아니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허!” 그 남자는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는 목소리가 크지 않았는데 그 목소리가 신세희로 하여금 의심이 가게 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듯이 물었다. “당신… 반호영?”반호영은 멈칫하더니 곧이어 선글라스를 벗고 온화한 표정으로 신세희를 바라봤다. “세희 씨, 드디어 왔네.” 신세희:“…” 그녀는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누구를 탓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었다. 부소경은 큰소리를 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여기에 위험이 없다고 하는 건 이미 여기를 다 정리해놨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무슨 상황인 걸까? 어쩌면 차에서 내리자마자 반호영을 만날 수 있는 거지? 신세희는 부소경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호영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 나도 생각지도 못했어.” “뭐라고?” “난 그냥 산책하러 나왔을 뿐이거든.” 반호영의 말투에는 숨길 수 없는 지긋지긋함이 묻어있었다. “숨이라도 돌리러 나오지 않으면 살인이라도 저지를뻔했어. 그래서 기사님 보고 아무 데나 가달라고 했더니 여기로 온 거야. 여기에 세워놓은지 한참 됐어.” 신세희:“…” “근데 한창 답답할 때 앞에서 꼬맹이 하나가 달려올 줄은 누가 알았겠어? 세희 씨, 우린 인연인가 봐. 처음 이 꼬맹이를 봤을 때 얼마
이건 정말 굴러들어 온 떡이 아니겠는가! 반호영이 이러한 생각에 취해있을 때 통통한 작은 주먹 하나가 그의 눈을 쳤다. “윽…” 반호영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힘 있는 그 주먹이 또 왼쪽 눈을 내리쳤다. “윽…” 신세희:“…” 그녀는 조마조마 해하며 딸을 바라봤다. “유리야, 이분은 너네 아빠가 아니야. 함부로 대하지 마. 그만해. 들었지?” 그녀는 반호영이 화가 나 유리를 차에서 밀어내려 버릴 것만 같았다. 만약 그렇다면 신세희는 반호영을 물어서라도 죽여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혼이 나서 말을 들을 줄 알았던 유리는 오히려 더욱 용감해졌다. 유리는 위험한 상황에 조금 무섭더라도 엄마를 지키려는 마음이 강했기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유리는 울음을 참아가며 반호영에게 소리쳤다. “나쁜 놈! 넌 나쁜 놈이야! 지금 판다 눈을 하고 있어도 다 보이는 거 알아! 내가 무섭지 않겠지만 잘 들어! 우리 아빠가 바로 차 뒤에 있어! 우리 엄마 때리면 아빠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흥!” “유리야, 아빠 얘기하지 마 제발.” 신세희는 절망스러웠다. 아직까지는 신세희와 유리만 반호영에게 발각된 상태였고 부소경은 발각되지 않았으나 이제 딸의 한마디에 부소경도 들키고 말았다. 신세희는 유리를 한대 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무서워하면서도 굳건한 그 눈빛을 보자 뭐라고 하지도 못했다. 그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침착하게 얘기했다. “반호영씨, 하나만 부탁할게.” “세희 씨, 부탁할 필요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가 됐던 다 해줄 테니까.” 반호영은 따뜻한 눈빛으로 신세희를 바라봤다. “나랑 우리 남편 그리고 딸까지 함께 죽게 해줘.” “안돼!” 반호영은 버럭 소리쳤다. 유리는 흠칫 놀라 엄마 품을 파고들었다. 반호영은 더 이상 얘기를 하지 않았다. 신세희도 더 이상 물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 이곳은 가성섬이다. 반호영의 구역이라는 말이다. 신세희는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혹시 불
신세희가 고개를 들자 임서아가 보였다. 오래 못본 동안 임서아는 무척 초췌해졌다. 피부는 누랬고 피를 다 빨린 강시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광기만은 예전과 같았다. “신세희, 상상도 못했지? 결국 내 손안에 들어올 줄? 하하하!” 임서아는 교만하게 웃었다. 신세희는 매우 침착했다. 그녀는 늘 이랬다. 위험한 상황일수록 더욱 차분했다. 그녀는 유리의 귀에 대고 말았다. “아가, 엄마가 저 여자 다리를 잡고 눌러둘 테니까 도망쳐, 도망칠 수 있는 만큼 멀리 가, 아까 들어올 때 길 기억나지?” 이건 모녀가 암묵적으로 약속한 일이었다. 전에 부소경을 따라 부 씨네 저택에 갈 때도 신세희는 딸에게 상황이 안 좋으면 도망가라고 했었다. 하지만 전제는 들어올 때 길을 꼭 기억해 두는 것이었다. 유리도 신세희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억했어 엄마.” “그래.” 신세희는 천천히 일어나 아무 말도 없이 임서아를 바라보기만 했다. 임서아는 더욱 득의양양해졌다. “어때, 신세희? 너무 놀랐지? 가성섬에 오자마자 우리 오빠한테 잡혀 여기로 오게될 줄 몰랐지? 넌 네 남편 부소경이 못하는 게 없는 줄 알아? 가성섬까지 공략하려고? 어림도 없지.” “유리야, 움직이지 마. 입구를 막고 있는 걸 보면 경계를 풀지 않았어. 움직이지 마 알겠지?” 신세희는 낮은 목소리로 유리에게 알려줬다. “응.”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임서아는 두 모녀가 서로 안고 두려워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니 더욱 자신만만해졌다. 이렇게 돌고 돌아 신세희가 또 이 임서아 손에 들어왔으니 이젠 날개를 꽂아줘도 날지 못하는 신세 아니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임서아는 너무 득의양양해졌다. “신세희, 넌 아직 모르겠구나. 네 남편이 그렇게 교만한 건 구경민이랑 친하기 때문이야. 근데 우리 할아버지도 구경민네 둘째 삼촌이랑 사이가 좋아. 예전에 구경민 삼촌이 부소경 편은 아니었지만 가성섬의 편을 들어주지도 않았었어.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 구경민 삼촌 구성훈, 그
“머리를 팝콘으로 만들어버릴 거야. 이 나쁜 사람. 때려! 때려!” 아이는 때리면서 울었다. 임서아는 어른이었으나 방금 너무 경계를 풀고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엎드려서 몸을 돌릴 수가 없었을뿐더러 유리가 몸 위에 올라타있으니 더욱 움직이기 힘들었다. 또 유리가 손에 들고 있는 곰돌이 눈알이 매우 딱딱했기에 맞으면 너무 아팠다. 임서아는 아파서 방어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유리가 때릴 때마다 그녀는 손으로 머리를 가릴 뿐 반격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유리는 더욱 신이 나서 때렸다. 임서아의 머리에는 혹이 가득 생겼다. 그녀는 너무 아파 빌기 시작했다. “그만 때려...” 그녀는 울면서 빌었고 빌 때마다 고개를 드는 모습에 유리는 또 다른 때릴 곳을 찾았다. 그리고 다음번에 고개를 들 때 대여섯 번 임서아의 이마를 내리쳤다. “윽...” 임서아는 아파서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이마에는 순식간에 혹이 가득 생겼다. 신세희: “...” 신세희는 멍하니 지켜봤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가, 빨리 도망가라고 했음에도 매번 엄마를 지키겠다고 무서워도 달려나간다. 신세희는 눈물이 났지만 딸에게 맞아 피멍이 잔뜩 생긴 임서아를 보자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옆에 서있던 가정부들조차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들도 임서아를 도와주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임서아는 군주 저택의 존경받는 손님이었다. 군주이신 반호경도 임 씨네 집안을 존경했으나 반호영은 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평소에 임 씨네가 여기에 와서 앉아있는 것조차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방금 이 사모님과 공주님을 친히 데리고 오시고 모시라고 분부하셨으니 가정부들은 신세희와 유리가 반호영의 손님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오히려 임서아가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들은 말리지 않았다. 그렇게 여섯 살짜리 어린아이는 임서아를 미친 듯이 때렸고 임서아는 여기저기 손으로 막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계속 유리보다 한 박자 늦었다. 임서아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다.